2012년 1월 31일 화요일

부러진 화살 1

  답답했다. 영화는 내 감성을 건드렸고 난 나도 몰래 울고 있었고 근래 본 영화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했다. 왜?

  내가 답답했던 이유는, 영화의 1.) 극단적인 캐릭터들, 그리고 설정된 캐릭터들을 통해  2). 노골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방법 때문이다.

    읽는 사람에게 반감을 주지 않고 현실을 담는 방법이 그 그릇(영화, 혹은 문학)의 깊이이다. 깊으면 깊을수록 작가와 같은 의견인 사람들, 의견이 다른 사람들,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그릇속의 깊이를 이해하게 된다. 포용, 이해, 관용을 공감을 통해 이끌어내는 깊은 그릇이 좋은 그릇이다.

     나는 아직 우리의 영화가 현실을 반영할 때, 깊은 그릇의 역할을 할 역량이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다. 문제있는 현실을 드러내는 것에는 익숙해지고 있지만, 깊이있게 드러내는 것은 부족하다. 너비대신 깊이.

  그 깊이의 단적인 예를 들면 영화와 같은 의견을 가진사람들도 영화를 보고 공감하고 눈물 흘릴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이다. 부러진 화살의 경우, 김명호 교수의 사례를 맡았던 법조인들을 반박하고 비난하는 식으로 영화가 전개되는데, 법조인들이 영화를 보고 공격당해 반감을 가지거나 사실을 외면하는 대신 똑같이 관중들처럼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량.

  같은 맥락에서, 영화의 설정 중 아쉬웠던 것은,   1. 캐릭터의 극단성이다.
 김명호교수는 극단적인 사람이다. 극단적인 성향의 캐릭터는 비현실적이다. 실제로 성균관대 수학과 김명호교수가 어떤 사람인가는 알 수 없으나, 영화 속의 김명호교수는 픽션인만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도록 그렸다면 영화의 깊이가 더 깊어졌을 것 같다. 물론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통해 보면 김명호교수의 일련의 변화들이 느껴지기도한다.
  법대로 하십시요를 외치는 강경한 모습, 교도소에서 시비거는 남자를 포용할 줄 아는 자상함, 또 감옥에서의 신체적 폭행에는 어떤 모습보다 유약해지고,
성장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강인함이 드러나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지,

 교도관들에게 이건 헌법 위반이라고요! 하고 엄격히 설교한 다음, 펜 좀... 하고 웃는 능청, 
이름을 손바닥에 받아적는 성의, 
  싱긋 웃는 얼굴에서 엔딩.

 청춘 소설의 해피엔딩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김명호 교수의 성장일기같기도 하다. 이 영화. 

  2. 그래서 아쉬운 것은, 

 약간의 고뇌를 표현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현실적으로 한 가장의 아버지인 사람이 김경호교수처럼 백퍼센트 어린아이의 완고한 순수함을 간직하기엔 더 많은 정신적인 수양과 노력이 필요로 했을텐데, 그 과정을 조금이나마 표현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all the kings men 에서 주지사를 도왔던 기자는 순수한 소년의 표정으로 점점 부패해져가는 주지사에 대한 반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옆에 남아있는 충성심이 뒤엉켜 그의 혼란스런 얼굴표정을 보면 내 마음조차 혼란스러웠다.

 3-1. 영화의 캐릭터 김명호교수가 조금 더 여유로웠다면,  

정의롭지 않은 것? 부조리? 기득권층의 권리 유지 세력? 들에 대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 하여 무조건적인 강경한 태도로 밀어부치는 대신,

아닌 것엔 아니라 했다 슬쩍 물러나고, 다시 대항했다, 또 물러났다 대항하는,
일종의 밀당,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다,
무조건적인 불의 대항세력이 아니라,
칼로 물 베기 라는 속담이 단적으로 드러내주듯,
재치있고 포용해서 너도 모르는 사이 널 무장해제 해버리는,
요런 대항세력들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3-2. 그리고 여유롭게 문제의식을 담은 영화,

그리고 그런 것들이
읽으면 읽을수록, 보면 볼수록
나도 모르는 사이 정의로움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혹은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문학과 영화의 역할이라고도 생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