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일 일요일

부재와 공터

부재, 김춘수.

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맨드라미 나팔꽃 봉숭아 같은 것
철마다 피곤
소리없이 저 버렸다

차가운 겨울에도
외롭게 햇살은
청석 섬돌 위에서
낮잠을 졸다 갔다

할 일 없이 세월은 흘러만 가고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

공터, 최승호.

시를 읽으며, 나는 어느 여름, 여행을 하다 잠시 쉬어가는 나그네가 되었다.

나는 어느 시골집 앞마당이 보이는 마루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 핀 맨드라미, 나팔꽃, 봉숭아가 눈에 띠어 주인의 허락 없이 들어와 앉았다.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선선한 바람이 분다. 수수대로 이루어진 얕고 연약한 울타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내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울음소리로 들렸다. 그래서 나는 마루에 앉아 알록달록 화단에 핀 꽃들을 보며, 두 발을 섬돌위에 올려놓고, 이 자리에 있었을 누군가를 생각했다. 누군가, 집에 주인이었을 그는 곱고 작은 할머니였을 것 같다. 꽃을 가꾸고, 울타리를 손질하고, 마루를 매끈매끈하게 닦는 할머니의 정성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무슨 마음으로 이 곳을 사랑했을까? 한 때 사랑받고 사랑 주었던 젊은 날을 그리워하면서. 할머니를 잃은 집이 외로워 보였다. 할머니가 없는 비어있는 마당에서, 나는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또 한 때 정성들여 꽃밭을 가꾸는 할머니가 그리워하며 살아갔을 꿈결 같은 그녀의 옛사랑을 상상했다.

  나는 고된 여행으로 지쳐있었다.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기려다 아무것도없음직한 공간에 잠시 쉬어가려했다. 보따리를 풀고 뻐근해진 뒷목을 스트레칭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나를 감싸안았다 놓아주었다. 바람의 시선을 따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음직했던 공간을 바람이 아무것도 없음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바닥엔 민들레와 잡초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풀잎에 스쳐지나가는 벌레들이 보였다. 한참을 그 무심한 포용력에 넋을 놓고, 지친 신체를 위로받고 있을 때,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풀씨를 날라 오던 따스한 바람은 비 냄새를 담은 바람으로 바뀌었고 조금 음산한 바람에 공터의 흙모래가 낮게 흩날린다. 나는 그만 이제 내가 일어나야 할 때가 된 듯해 일어서 공터를 떠났다.

  부재의 공간, 할머니의 마당에는 한 때 사랑이 있었고, 사랑받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들이 있다. 공터는 사랑받고 사랑주던 공간이 아닌 관용의 공간이다. 바람을 타고 꽃씨가, 어느 달 밝은 밤엔 도마뱀이 주저 앉았다, 스쳐지나가는 새가 잠시 다리를 쉬었다 갈 뿐이다. 공터는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 조금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안아준다. 부재가 사랑받음에 익숙해졌던 대상이라면, 공터는 사랑받은 적은 없어, 나아가 사랑 주기엔 조금 무심한, 그래서 그 대신 관용을 베풀어주는 대상이다.

  부재는 언제나 애인으로부터 구애받아 사랑받는 데 익숙해진(그래서 받을 사랑이 없으면 허전해하는)여자의 모습을 느끼고, 반대로 공터는 성적 매력이 부족해 남자의 시선에 한눈에 들지 못하는 여성의 모습을 느끼기도 한다. 때로 남자에게 여자로 다가오지 않는 여성은 종종, 오히려 가끔 연애상담에 있었으면 하는, 무심한 캐릭터로 다가온다.

  때론 공터는 부재를 부러워하고, 부재는 공터를 부러워할 것이다. (부재와 공터를 두 여성의 이름처럼 불러보았다.) 부재는 스쳐지나가 사라진 애정에 사랑이란 감정의 허무함을 느낀다. 때론 사랑이 없어 연약해지는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혹은 구애하다 실패한 남자는 친구란 인연으로조차 남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 그래서 늘 친구란 이름으로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 공터가 부럽다. 반면에 공터는, 지나쳐갈 뿐인 사람들이 아쉬워 부재가 부럽다. 비록 짧은 순간들일지라도 내 사람을 갖고 싶을 때가 있다. 스쳐지나가는 남의 사람들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는 것 같지만, 동시에 언제나 나와 함께 없는 것과 같다. 사랑받고 사랑 주는 데에 익숙한 부재를 보고, 내가 베푸는 관용이 사랑을 주고받는 것을 포기한 데서 시작된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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