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1일 토요일
희롱
이사 급의 나이든 중년 남성이 있었습니다. 너무 많이 웃어서 눈꼬리가 반달로 내려갔고 불룩 술배나온 전형적인 한국인 남성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느날 신입여직원이 한 사람 들어왔습니다. 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얌전하기보단 묵뚝뚝하거나 때론 퉁명스럽고, 고집불통이며 나이도 어린데 윗사람들께 살갑게 대할 줄을 도무지 모릅니다.
중년남성은 여자직원이 꼭 집에 있는 딸 같습니다. 그래서 친해지고 싶습니다. 그런데 낯가리고, 업무 외의 대화는 하려들지 않습니다. 중년남성은 새로들어온 여자아이에게 뭔가를 좀 알려줘야 겠다고 다짐합니다. 대화를 시도합니다.
남자친구에 대해 물어봅니다. 과거 연애사도 물어봅니다. 짝사랑은 없었느냐 묻습니다. 남자친구가 왜 없는지도 물어봅니다. 대화는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여직원의 이마에는 참을 인 두글자가 새겨집니다. 초등학교 첫사랑 얘기에 이상형까지 물어올 기세입니다. 여직원에게는 과한 상사의 수다에 지퍼를 채울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이만하면 상사가 알아들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에 헤어졌는데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함께 점심먹는 시간, 남자는 여직원에게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합니다.
자기 운동싫어하지? 자기는 운동 좀 해야겠는데. 내지는 자기 같은 타입은 내가 좀 잘 아는데, 어깨도 떡 벌어지고.
여직원은 상사의 과한 사생활에 대한 질문과 점심시간에 끊임 없이 물어오는 여직원의 몸에 대한 얘기로 질려버린 상황입니다. 웬만한 사적인 대화는 정색으로 반응합니다. 이쯤 하면 상사가 내가 당신과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지 않다, 는 심정을 이해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여직원 혼자 만의 생각인 듯 싶습니다.
점심시간 후에 차장님과 이사님과 여직원이 있는 자리에서 일어난 대화입니다.
지연씨는 내가 봤을 때, 과자도 많이 좋아하는 거 같아. 차장님, 지연씨랑 나는 좋아하는 과자 스타일도 비슷해. 내가 좀 안다니까. 지연씨 이거 먹을래?
옆자리에 앉은 직원에게 뜯어놓은 과자를 하나 건네줍니다. 매우 사적인, 상냥한 대화입니다만은 이미 여직원은 상사의 대화방식이 불편함을 넘어서 불쾌합니다. 딸같다며 예뻐해준다는 이름 아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배려 내지는 존중을 하지 않습니다. 여직원은 괜찮습니다, 하고 사양합니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 과자를 입에 쓱 넣어버립니다.
이사의 여직원 대응방식은 분명히 불편합니다. 여직원의 스트레스는 끝에 달했습니다. 무시와 정색으로 불쾌도를 충분히 표시했다고 생각했으나 상사는 알아들은 것 같지 않습니다.
상사의 여직원을 향한 사소한 행동들은 희롱이란 단어에 대해 생각나게 합니다.
꼭 초등학교 일학년 때 하루종일 연필로 쿡쿡 찔러대고 지우개를 반으로 뚝 짤라버리는 등 못살게 굴던 짝꿍이 생각납니다. 엄마는 짝꿍의 어떤 행동에도 반응을 보이지 말고 무시하라고 하셨습니다. 무려 15년전에.
회사에 남학생인턴이 한 사람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여직원은 회사의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게 되고, 이사와 남학생 인턴은 현재 있는 회사에 계속 근무할 예정입니다. 이사는 뭔가 아쉽습니다. 여직원에게 슬금 다가와 옆에 앉아서 몇마디 건네보았습니다.
지연씨 아쉬워서 어떡하지? 직원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낯으로 쳐다봅니다.꼬셔야 되잖아. 아쉬우면 내가 그리로 보내줄까? (남자인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남자는 한마디 덧붙입니다. 나도 그리로 갈까? 보고싶으면 전화해.
여직원은 상사에 대해,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과거 사내여직원에 대한 직장 상사의 안 좋은 대우가 빈번했을 때, 여직원 대우 사례들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듯함. 악의는 없음. 그렇지만 난 이사에게 개인적인 악의가 생길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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