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이제 열아홉살이 되었다.
나는 동생과 한달 하고도 열흘이 넘는 시간을 단 둘이 공유했다.
우리는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중3부터 떨어져 지내서 나는 사춘기, 혹은 청춘을 공유하지 못했다. 기숙사에서 돌아와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면 생각보다 동생과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해 갈등의 첫단계에 이르렀다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다. 또 동생이 내 자존심을, 혹은 내가 동생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단 한번도 큰 싸움으로 번지진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아슬아슬한 관계였던 것 같다.
<엄마 나도 동생 갖고 싶다>고 강력히 얘기했던 20년 전의 김도영은 어린 나이에도 현명했다.엄마와 아빠가 나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동생이었다.
열아홉살밖에 안된 그 애는 내가 흔히 돈지랄만 하고 올 수 있을지도 몰랐던 여행을 더욱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다.
지나가는 갈매기의 목을 관찰하고, 알함브라 궁전의 벽돌타일의 개수를 새고, 망고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자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서점에 들어가 스페인어로 된 수학책을 보고 이야기를 해주고, 커다란 개만 지나가면 몸을 움추리고 무서워하면서 개는 왜 꼬리를 저렇게 흔들어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또 자기 손에 자라는 손톱, 잇몸에서 자라는 이빨 (유독 손톱이 작다)을 신체부위의 가장 끝 부분에서 자라는 딱딱한 것, 이라고 묘사하면서 자신은 신경의 끝에서 자라는 게 왜 다 작냐고 투덜거렸다.
내 주변의누구보다 툭툭 튀어나오는 관찰들은 직관적이고 반짝반짝거렸지만
내 주변의 누구보다 자신이 얼마나 반짝거리는 말을 하고 있는지 몰라서 그 애는 더 반짝거렸던 것 같다.
난 대학 4년 동안 반짝반짝거리는 재밌는 이야기들을 찾아 헤메다녔는데 결국은 내 옆에 가장 반짝반짝거리는 게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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