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7일 목요일
모국어가 아닌 영어란!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 영어를 하고 있는 나는 이상하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말하는 억양, 인토네이션 때문에 올라가는 목소리 처럼 표면적으로 다를 것 같지만 말을 하고 있는 내가 달라진다. 깔깔 웃고 드립칠 수 있게 되어도 싫다. 차라리 왓? 하고 되묻거나 무슨 말인지몰라 벙쪄있는 것이 낫다. 모국어가 아닌 질문에 예 아니오를 이야기하는 것은 같겠지만, 언어에 담겨야 할 내 영혼이 없고 어디서 굴러들어온 광고나 코미디 드라마의 누군가를 흉내내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이유는 내 생각엔 내가 언어에 나를 투영시키기에 이야기하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영어는 내가 투영되기엔 모자라다. 그래서 나는 언어의 구조 안에, 다른 스쳐지나가는 영어들의 느낌을 대신 투영한다. 미국드라마, 영어를 쓰는 사람들의 제스처를 아 대충 이런 거.. 하면서 대신 집어넣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를 쓰는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내가 거슬려했던 누군가가 나도 모르는 사이 말을 해야하니까 들어가 있는 것이다.
미국코미디에서 배운거같은 툭하면 나오는 과장된 얕은 제스처는 질색이다. Maybe you can... 하고 치는 말은 찌질하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can은 소름끼치도록 싫다. 상대방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때 Sorry? 하고 표정을 찡그리며 되묻는 것은 최고봉으로 싫고, 절대 배우고 싶지 않은 영어의 부분이다. 발을 밟거나 실수했을 때, oh, sorry 하고 높은 톤으로 놀랐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것도 마음에 안든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excuse me 는 내가 요새 그것을 어찌 마음에 들게 말할 수 있을까 요즈음 고민하고 있는 표현이다.
나에게 영어는 아직, 내가 담기지 않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얕은 사교성 짙은 언어, 다른 하나는 학문을 이야기하는 공공자리에서 쓰이는 언어. 차라리 학문적인 이유로 쓰이는 영어가 낫다. 절제되고 천천히 감정이 드러나 있지 않고 전달해주는 언어를 쓸 때는 그나마 영어를 쓰는 나 자신을 마음에 들어한다만.
어릴 적부터 바이링규어였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두 언어의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두 가지의 언어에 스스로가 담기기 시작한 모양이다. 나는 아마도 영어를 더 진실되게 구사하는 사람을 만나봐야 할 것만 같다.
2012년 9월 23일 일요일
법주사 템플스테이
조금씩 지쳐가던 이곳의,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때로는 외로워지게 만드는 것들이 생각날 때 마다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생겼다. 우연한 기회에 법주사 템플스테이, 나에게 안식을 선물하기로 했다. 처음엔 정말 아무런 기대 없이 갔다.
그런데 나는 생각보다 너무 많은 따스한 기억을 가지고 온 것 같다. 고작 1박2일 뿐이라서, 사실은 그렇게 많은 양의 기억도 아니고, 정많은 나만 이렇게 특별히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산책하면서 밥먹으면서 108배하고 돌아오면서 그리고 집에가는 버스까지 걸어가면서 아주 작은 수다들이 나를 치유해준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이해타산 없는 인간관계였다.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바람처럼 다가와서 어루만져주고 가는 것들이었다. 모르면 모른다고, 이해할 수 없지만 웃어도 되었다. 긴장도 없고 눈치도 안 보고 풀밭에 풀어놓은 망아지처럼 돌아다녔다.
아주 일상적이었던, 한 때는 나의 전부였던 대화방식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에 대해, 눈물날만큼 감사하고 또 스쳐지나가듯 만난 인연의 실들이 나에게 와서 엃히고 섥히기를,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나는 생각보다 너무 많은 따스한 기억을 가지고 온 것 같다. 고작 1박2일 뿐이라서, 사실은 그렇게 많은 양의 기억도 아니고, 정많은 나만 이렇게 특별히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산책하면서 밥먹으면서 108배하고 돌아오면서 그리고 집에가는 버스까지 걸어가면서 아주 작은 수다들이 나를 치유해준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이해타산 없는 인간관계였다.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바람처럼 다가와서 어루만져주고 가는 것들이었다. 모르면 모른다고, 이해할 수 없지만 웃어도 되었다. 긴장도 없고 눈치도 안 보고 풀밭에 풀어놓은 망아지처럼 돌아다녔다.
아주 일상적이었던, 한 때는 나의 전부였던 대화방식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에 대해, 눈물날만큼 감사하고 또 스쳐지나가듯 만난 인연의 실들이 나에게 와서 엃히고 섥히기를,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는 중이다.
2012년 9월 20일 목요일
국제도서기간입니다2
나와 가장 가까운 곳의 있는 책의 52페이지의 다섯번째 문장을 상태에 포스팅했다.
호위병을 거느려도 위험하며, 공연히 서너 명의 헌병을 헛되이 죽음으로 몰아넣을 뿐이라고 했다.
제목도 알고, 작가도 알고, 분명히 여러번까진 아니더라도 한번 이상 읽은 책 인데 문장만 따로 떼어놓고 페북 들락날락거리는 횟수만큼이나 자주 보다 보니 자꾸 책의 스토리 중 하나의 묘사로 읽히지 않고 그냥 문장 하나만으로 읽힌다. 문장의 앞뒤 상황은 잊혀지고. 호위병을 거느려도 위험한 상황, 공연히 서너 명의 헌병을 죽음에 몰아 넣은 상황의 그 사람의 뒷태를 떠올려 보게 된다.
그 외 잡다한....왜 뿐이라고 했다, 라고 했을까? 누군가의 말, 이었을 것이다. 공연히 와 헛되이는 참 잘 어울린다.헌병과 호위병은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인가? 대립하는 관계?
마지막으로 도대체 이게 레미제라블과 무슨관련이 있는 거지? 하고 생각한다.
호위병을 거느려도 위험하며, 공연히 서너 명의 헌병을 헛되이 죽음으로 몰아넣을 뿐이라고 했다.
제목도 알고, 작가도 알고, 분명히 여러번까진 아니더라도 한번 이상 읽은 책 인데 문장만 따로 떼어놓고 페북 들락날락거리는 횟수만큼이나 자주 보다 보니 자꾸 책의 스토리 중 하나의 묘사로 읽히지 않고 그냥 문장 하나만으로 읽힌다. 문장의 앞뒤 상황은 잊혀지고. 호위병을 거느려도 위험한 상황, 공연히 서너 명의 헌병을 죽음에 몰아 넣은 상황의 그 사람의 뒷태를 떠올려 보게 된다.
그 외 잡다한....왜 뿐이라고 했다, 라고 했을까? 누군가의 말, 이었을 것이다. 공연히 와 헛되이는 참 잘 어울린다.헌병과 호위병은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인가? 대립하는 관계?
마지막으로 도대체 이게 레미제라블과 무슨관련이 있는 거지? 하고 생각한다.
2012년 9월 17일 월요일
성폭행에 관련하여1
근래 두 남자와 짧게 스쳐지나간 대화속에, 나의 한토막 짧은 감상. 주제는 다소 민감할수 있는, 성폭행. 일단 대한민국에 이렇게 많은 성폭행이 일어나고 있었구나... 싶다. 물론 이제까지 조명이 안되었을 뿐이지.. 라고 생각해오긴 하지만 하루에도 몇번씩 새로운 성폭행 뉴스를 접한다.
대화는 물론 우연이나 둘 다 군생활과 연관하여 시작했다. 커다란 휴게실 소파에 드러누워 야식, 게임, 야구, 클럽과 같이 시시껄렁한 얘기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기억을 되살리자면 내가 Z의 신경을 건드린 것 같다. Z는 다소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 그거 뭐 여자들 책임도 없지 않아 있지. 밤에 말이야 짧은 치마 입고 술취해서 돌아다니고 말이야. 그리고 덧붙이기를 물론 니가 군대를 안 다녀와서 이 사회..말이야? 응 사회구조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으로 시작하는 약간의 상대에 대한 존중처럼 보이게끔 하는 대화방식...
그날 밤은 이곳에 내려와서 가장 우울했던 날이었던 것 같다. 여러가지 문젯거리와 생각할 것들이 얽히고 섥혀 애꿎은 전화기만 보며 혹시나 나를 찾는 이 없을까 생각했다. 누구든 옆에 있었으면 해서 밖으로 나갔더니 깜깜한 하늘에 별조차 보이지 않고 운치있다고 생각했던 어제의 기억따위 사라지고 이곳처럼 황폐한 곳은 없구나 싶었다.
두번째는 친한 친구의 전화였다. 링링 울리는 전화기소리만 기다리다 받은 친구에게 이 일화에 대해 다소 격앙되어 이야기하긴 했는데. 친구는 또래의 젊은 여자아이들에 대해 비판했다.
자기밖에 모르고, 이기적이며 극단적인 사고를 한다. 예를 들면 성폭행문제에 대해 무조건 남자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든가.
성폭행문제에 다가가는 방식이 다소 극단적이게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성폭행뉴스를 들으면 일단 화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과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분노의 본바탕은 두려움이다. 혹자는 성범죄알림 사이트에 주소를 쳐보는 것조차 꺼렸다. 아는 동생에게 심드렁하게 이야기했을 뿐인 오빠에 대해 다소 감정적으로 이야기한 나에 대한 친구의 생각처럼, 일반적으로 분노와 두려움이 섞여나오는 감정적인 반응은 사람들에게 반감을 줄 법하다.
성폭행! 하면 무조건 남자잘못 아니야? 처럼 내가 위에서 느꼈듯 "너무나 전형적이고 생각없이" 보일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얕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일단, 친구가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와 다른 의견을 내놓는 친구에 대한 이해의 시간.
친구는 한 가지 비유를 했다. 지갑이 없어졌다, 지갑을 누군가 훔쳐갔다. 물론 훔쳐간 놈도 나쁜놈이지만 훔치게끔 아무데나 지갑을 둔놈에게도 책임이 있어. 그렇지 않어? 물론 성폭행은 나쁜 거지만 여자한테도 분명 책임이 있는 거야. 요새 여자애들은 너무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흑백논리로 다 누구 잘못인양 다가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친구는 군이라는 특정한 환경에서 비유한 것과 비슷한 상황의 경험을 한 것 같다. 분명 피해자처럼 보이는 이에게 책임을 전가해버리는 상황을 겪은 것 같다. 마음고생도 했을 것이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한테 이야기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갑이 없어지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하는 문제와 성폭행은 비교될 수 없는 문제다. 굳이 엄격한 기준으로 과실의 책임을 묻는 문제라면, 친구의 의견과 나도 같다. 상황이 상황마다 각기 다른만큼, 모든 과실과 책임이 성폭행가해자쪽이다 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또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어린 자매 성폭행사건과 관련하여, 성폭행가해자의 보호되지않는 사생활에 대해서도 논란의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황마다 다른 가해자의 특정 상황을 고려하지않고 일괄적으로 마녀사냥되는 언론이라든가.
하지만 내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모든 상황의 원인은 상황마다 다르고 그것에 대한 각기다른 반응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엇보다 화가났던 것은 친구와 오빠처럼 이야기하는 태도였던 것 같다. 성폭행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예방은 <야동보지않기> <여자는 밤에늦게다니지않기> 내지 <화학적 및 물리적 거세>와 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변화다.
단순히 남녀사이의 벌어지는 일로 치부하는 인식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학급에서 벌어지는 누가 내지갑훔쳐갔어 다들 손 머리위로! 와 같은 사태처럼 누가 원인제공의 비율이 큰 것인가를 따지는 문제 이상의 접근이 필요하다.
(학교가야되는데 To be continued )
국제도서주간입니다 하고 시작되는 뉴스피드!
국제도서기간입니다,
2012.9.17 국제도서주간입니다.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과 가장 가까운 곳의 책을 집어 들고, 52페이지를 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문장을 '상태 Update Status'에 포스팅합니다. 책 제목은 알리지 마시고 이 규칙도 당신의 상태 status의 일부로 옮겨 주십시오.
It's international book week. The rules: grab the closest book to you, turn to page 52, post the 5th sentence as your status. Don't mention the title. Copy the rules as part of your status.
세상에, 수인이의 뉴스피드를 타고 처음 올라온 어젯밤의 요 공고문을 보며 나는 탄성을 내질렀다.
하룻밤사이에 하나둘씩 올라오는 피드백들은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하드커버, 책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 SNS 를 통해서 요렇게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즐거웠다.
나는 아직도 취미가 뭐니? 하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책읽기요 하고 대답하고 싶지만, 일본의 어느 소설에서 보았듯
책읽기가 취미여요 하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동시대의 젊은이들은 간혹 편견을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되지도 않는 활동을 갖다붙이다가 거짓말임이 드러나 탈탈 털리기도 하고, 책읽기를 제외한 내 취미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한가지 결론! 나에게 진정한 취미는 없구마잉 참 재미없는 삶을 살았어... 낙담하기도 하였었다.
그런데 한 후배동생이, 요렇게 페이스북의 담벼락을 수놓는 풍경들에 대하여 시니컬하게 "허세"라 요약한 것을 보고 느낀 바가 생기게 되었다.
나 책읽기가 취미여요 했을 때 사람들이 나에대해 비웃을까봐 취미를 얘기할 때 그럴듯한 게 모 없을까.. 고민했던 경험,
그래서 차라리 내 앞의 상대의 긴장을 풀어주고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티비보기요! 집에서 뒹굴거리기! 맛집찾아다니기! 하고 얘기하자, 하고 생각했던 것과 어느정도 연결고리가 있는 듯 한데.
같은 행각을 보고도 자신이 아는바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하는 구나 싶었다. 나의 스무살 남짓 시간 속에, 대한민국의 키워드가 허세임은 확연히 드러나는 사실이다.
허세인 행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도 허세섞인 행동이 될 수 있다. 하물며 누군가의 집에 방문했을 때,
화장실에는, 허세와 자신감의 차이가 적혀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준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였다.
요는 그러하다. 두가지 일화가 얽혀가며 ㅡ무엇을 쓰려하는지 전달하려는 능력에 또다시 좌절하게 되었긴 하지만ㅡ
사람들의 행동은 상대에 따라 그것을 거짓으로도 진실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나의 행동의 진실성이다.
때로 다양한 사람들은 진실을 오해하기도 하고 어쩌면 사람들의 의해 내 거짓이 까발려지기도 하고 진실인 양 아주 잘 덮여질 수도 있겠지만,
또 내가 누군가의 행동을 진실인 양 꾸며주기도 하고 거짓으로 치부하기도 하겠지만,
더더욱이 누군가의 행동을 진실로 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아닌지 조차 알 수 없지만
아이고 사는 게 참 복잡하다.
그리고 난 페이스북의 올라오는 하드커버 책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도 좋다. 안 그래도 요새, 스스로 아마존의 하드커버가 아닌 책, 컨텐츠에 대한 관심이 좀 생기던 참에 하드커버에 대한 옛 사랑이 되살아나게 되었다.
참 올라오는 책들 중에 내가 아는 글귀가 없었다는 사실이 슬펐다.
조각조각 생기는 얕은 문구들에 대한 관심이
또다른 기회로 이어질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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